사랑한다고 말했잖아
박정임
물결처럼 번지는 감정의 잔상에서, 박정임은 사진을 하나의 ‘기억의 감각기관’으로 작동시킨다. 그에게 사진은 사건을 재현하는 매체가 아니라, 이해받지 못한 말들이 흩어져 머무는 장소이며, 스스로 말이 되지 못한 채 감정의 표면에 남은 감각의 입자들을 포착하는 일이다. 이 전시는 특정한 서사를 말하거나 어떤 의미를 주장하지 않는다. 오히려 말을 삼킨 침묵의 틈 사이로 관람자의 감정이 잔물결처럼 울리도록 기다린다.
작품들은 물질적인 장면처럼 보이지만, 실은 감정의 부피를 띤 이미지다. 시간 속에서 사라졌으나 여전히 마음속에 남은 정념의 편린들이 이미지의 언어로 다시 떠오른다. 붉은 수박의 단면에서 흘러나오는 여름의 온도, 희미한 햇살이 팔 위에서 일렁이던 오후의 촉감, 그 말끝마다 삼켜야 했던 감정들은 사진의 표면에 침전되어 있다.
작가의 사진들은 기억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타인의 감각을 향해 열려 있는 비문장적 시(詩)이며, 박정임은 그 낱말 사이에 감정을 숨기듯 꺼낸다. 그 침묵과 여백은 곧, 사진이 감정을 다루는 가장 정직한 방식이기도 하다.